테드 코넌트는 1952년 운크라(United Nations Korea Reconstruction Agency, UNKRA) 소속의 녹음 기사로 처음 한국에 온 뒤, 운크라, 유네스코, 미군의 문화영화 및 뉴스릴 제작에 관여했다. 테드 코넌트가 소장한 영상, 사진, 문서 자료 등은 콜럼비아대학 동아시아도서관에 기증되었는데, 이 중 한국관련 영상물은 총 71편으로, 2011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14편을 수집했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역사영상융합연구팀에서 57편을 추가 수집했다.
테드 코넌트는 고교 시절 레이더, 무선전신에 대한 교육을 받고 운송선박, 라디오, TV 방송국 등에서 일하면서 오디오, 방송기술을 습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태평양 상선을 타고 무선통신담당으로 전쟁을 경험했다. 전쟁 후 스워스모어(Swarthmore)대학을 다니며 방송 일을 하던 중 다큐멘터리 감독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를 만나 그의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인생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52년 유엔소속 녹음 기사로 처음 한국에 온 뒤, 1957년에는 운크라가 설립한 농업학교 ‘신생활교육원’에서 시청각 교육을 담당했다. 1958년에는 시라큐스 계약에 따라 운크라에서 공보처 영화과의 녹음 담당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국 영화인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녹음 기재의 설비에도 적극 관여했다. 이 시기 테드 코넌트는 유엔, 유네스코, 미군 등을 위해 문화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며,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사운드 엔지니어로 BBC, CBS, NBC 등 상업방송국을 위한 뉴스릴 제작에도 관여했다. 그런 한편, 이형표 감독과 밀접하게 교류하면서 한국을 주제로 한 <위기의 아이들 Children in Crisis>, <한국의 예술가 Korean Artist> 등의 다큐멘터리도 연출하였다.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역사영상융합연구팀에서 소장한 테드 코넌트 콜렉션의 71편의 영상 중 중복 영상 한 편을 제외한 70편의 영상은 저작권 합의서에 따라 연구소 내부에서만 학술적 목적으로 시사가 가능하며 이 영상들 전체에 대한 카탈로깅 및 일부 영상에 대한 해제는 온라인으로 서비스된다. 학술적 목적 등을 위해 이 영상들의 스틸 컷(정지사진)을 활용할 경우, 원 자료의 소장처(하버드대학교 영상아카이브)를 밝혀야 한다.
(참고자료: 최소원, 「‘2011 발굴전’ 수집 경과 보고」, 한국영상자료원, 냉전시대 한국의 문화영화 – 테드 코넌트, 험프리 렌지 콜렉션을 중심으로, 2011; 공영민, 「공보처 영화과와 영화인력: 대한원조와 테드 코넌트를 중심으로」, 한국영상자료원, 같은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