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영화제작소는 1948년 7월 발족된 공보처 공보국 영화과로 시작되었다. 공보국 영화과는 <대한뉴스>를 비롯한 뉴스영화와 문화영화를 생산했으며, 1961년 6월 공보부 공보국 영화과로 재편되면서, 국립영화제작소(소장 이성철)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이후 1994년 국립영상제작소로 개명했다가 1999년 국립영상간행물제작소, 2004년 영상홍보원, 2007년 한국정책방송원으로 재편되었다.
“문화영화”라는 용어는 정확한 개념 규정이 어려운 용어 중 하나이다. 한국에서 문화영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독일 우파의 ‘Kulturfilm’이라는 용어를 수입하여 ‘문화영화’로 번역하고 이를 1926년 동아일보 (1926.5.16.)에서 차용했을 때부터였다. 이 시기부터 문화영화는 “극영화가 아닌 것”(일제말기), “실사 기록을 위주로 한 것”(이승만 정권기), “사실 기록을 위주로 제작된 영화”(박정희 정권기) 등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문화영화는 <팔도강산>(배석인, 1967)과 같이 극화된 영화부터 <홍길동>(신동헌, 1967)과 같은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화들을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했다. 문화영화라는 개념이 이 같은 복잡성을 띠고 있음에도,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역사영상융합팀은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주로 제작되었던 이 영상들을 “문화영화”로 분류한다. 우리 팀에서 카탈로깅한 영상들이 주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영상이며, “문화영화”는 이 시기 국립영화제작소 제작 영화들을 통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공보처와 1960년대 이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했던 문화영화들은 현재 KTV e-영상역사관의 영상관 중 ‘분야별 기록영상’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역사영상융합연구팀은 이 중에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작된 영상들 중 한국어 외의 언어로 제작된 영상, 제작년도 오류로 잘못 기입된 영상 등을 제외하고 980여 편의 영상에 대한 카탈로깅을 진행했다. 또한, 역사적, 영화사적 중요도에 따라 선별된 96편에 대한 해제 작업도 진행하여 서비스하고 있다.
|